운영일지
내가 앓던 스타트업 병과 마케팅 에이전시 대표의 일
마케팅 에이전시의 본질이 무엇이겠나.
마케팅의 실력과 인프라 그리고 에이전시 사업성인데. 생각해보면 내가 올라운더로 이런 저런 요즘 시대 필요한 역량과 스킬,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
마케터인가. 사업가인가. 라는 부분에서 늘 마케터라는 본질을 지키려고 한 게 해그로시의 성과이자 한계임을 알고 있다. 지금의 슬로건처럼 정말 작품 빚듯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건 외부에서 볼 때 인하우스 마케터와 뭐가 다르냐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퀄과 성과 속도를 갖추면서도 어느 정도는 여러 브랜드를 책임질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해그로시는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서비스 업종은 퀄과 양 맞추기가 생명..
O2O나 서비스 업종, 플랫폼, 커머스의 CS 등 여러 브랜드를 내부에서 구조화하고 성장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굉장히 많은 여러 부서 (경영진의 입장 포함) 이야기를 조율하게 된다. 음식점에 손 많이 가는 메인 메뉴 주문이 늘어나는데 주방과 홀 일손이 부족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보통 이럴 때에는 가게를 확장하고 사람도 더 뽑고 주인이 더 열심히 일하고 하겠지.
근데 나는 딱히 매체를 파는 사람도 아니고,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의 하이엔드 fee를 붙여 팔고 있을 뿐이라. 원래는 이제 프로젝트 단가가 더 띄어야 하는 게 맞다. 인력들도, 기획 수준도, 컨텐츠의 감도도, 물량도 모두 시스템화를 단단하게 했으니까. 다만 그러기 위해 한정된 브랜드와 일한다.
사업성? 별로다.
모듈화해서 많이 팔 수 있는 자동화 상품도 아니고, 리드 타임이 긴 B2B에서 처음부터 허들 높인 기간제 프로젝트를 통합 전략부터 시작하는 형태로 판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지셔닝이 단단했기에, 주변 대표님들이 멱살 잡듯 소개소개소개소개소개를 너무 많이 해주셔서 한번씩 계단을 거쳐 해그로시는 성장했다. 마치 로컬에 아는 사람만 아는 구석탱이 맛집 같은 곳이랄까.
브랜딩보다는 세일즈, 세일즈보다는 다시 전문성
나는 혼자 컨설팅을 수주해서 팔 때부터, 기업에 브랜드 전체 일을 가끔 봐주는 때부터 월에 400씩을 받았다. 회사 생활에서는 그보다 더 받았지만 자리를 바꾸고 역량을 잘 다듬어서 효용대로 제공하니 그 돈을 받아도 3개월, 6개월 연장들을 해주셨다.
하지만 이 돈을 받는 게 맞나? 라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비스의 제공 범위를 일부 실무 인프라를 붙여 그냥 전략 헤드가 아닌, 기획과 셋팅까지 붙여주는 것으로 조정했다. 1-2달 익히면 러닝 커브 좋은 대표님들은 어차피 다들 알아서 하게 되시기 때문에 결국 손발이 필요하니까. 그 일부까지 남겨주고 오면, 이후 모듈처럼 조직을 셋팅해서 50%는 자동화하게 된다.
앞으로도 소수 브랜드만 한정, 차라리 사업자 하나 더
지금도 사업자는 따로 더 있다. 해그로시는 최소 계약 금액이 1천만원부터 시작한다. 기간제 기준인데, 늘 그 이상 단가로만 프로젝트 단가가 오간다. 사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안에 내용을 보면 주는 게 워낙 많아서 참 애매하게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업자를 하나 더 이번에는 어느 저가형 스펙을 파는 회사 대표와 협의한다. 그곳은 아마 기업체 간 거래 뿐 아니라 다른 타겟들도 섞여 있는 듯 하다. 다만 거기서는 리소스를 최대한 덜 쓸 예정이다.
우습게도 난 해그로시로 돈 벌 생각이 없었다.
이건 정말 우스운 소리이다. 법인 운영하면서, 클라이언트한테 어필해도 부족할 판에 돈 벌 생각 별로 없다는 말은 모순이다. 근데 작정하고 볼륨 키우고 남길 생각이었으면 나는 진즉 연락처에 있는 대표님들한테 밥사고 찾아가고 어필하고 메일보내고 전화하고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내게 해그로시는, 내가 인하우스를 나와서도 확실하게 마케터로서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름값이다. 영업 없이 거래처 확보한다는 말도 참 어이없는 소리인데 굳이 그 말을 가끔 쓰는 건. 그만큼 날 보고 프로젝트가 들어오고, 난 실무를 뛰고 숫자를 계속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해그로시가 유지되고 돌아가려면 지금 4-5개 거래처의 숫자가 유지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어느 기업이 스케일업하고 크는 데 있어 셀 조직처럼 붙어서 라인의 턴 키로 붙어서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나는 해그로시를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할 것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컨설팅 팔고 있다.
늘 누울 자리는 찾으면 있다.
클라이언트 분들에게 좋은 경험과 성과를 주고 싶고, 돈값 이상을 계속 증명하고 싶어서. 우린 좀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뒤에서는 굉장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포트폴리오나 커리어 페이퍼에는 적히지 않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겪어봐야 안다. 요즘처럼 AI와 프리랜서가 넘쳐나는 시장에 해그로시는 '준비된 시스템'으로 다가간다. 어제도 두 명의 사람을 어느 프로젝트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프로젝트 크루들은 오래 알고 지내거나,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소개 받은 사람들이다. 말도 안되는 사람 군상이 워낙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필터링하고 가르치고 누르고 보상하고 하는 과정이 에이전시 시스템의 숙명 같다.
그리고 결국 마케팅 서비스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가장 주인의식이 넘치는 내가 직접 플레이어로 뛰는 것이다. 결국 해그로시의 클라이언트 분들은 우리 법인보다 다들 훨씬 큰 규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터주신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시는 분들이 코칭과 컨설팅을 받아 가신다. 적어도 내가 나에게 주는 월급 이상은 대행 거래처가 아니어도 알아서 번다.
앞으로 언젠가는
브랜드를 창업하고 싶다. 그런데 물질적인 상품보다는, 마이클 포터가 말하는 그 옛날 CSV 같은 사회공헌적이면서도 봉사보다는 자립심을 키워줄 수 있는 어떤 BM에 몰두하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 문학 책도 내고 싶다. 몇 년째 1천명 팔로워에서 줄지도 않고 크게 늘지도 않고 내 글을 기다려주는 분들이 있다. 글에서 피맛이 좀 나야 되는데, 사업하면서는 주변의 부정적인 사람은 한 명도 빠짐 없이 다 잘라 버려서 완전히 T가 되어 버렸...
-
이렇게 아직 철이 없는건지, 에이전시 대표스럽지 못한건지. 여유 리소스를 두고 산다. 결국 파트너십의 브랜드는 지금처럼 4-5곳 중에서도 딱 2곳 혹은 3곳만 철저히 성과 관리하고 투입하며, 남은 시간은 다른데 쓸 것 같다.
하 이 브런치 채널, 좀 잘 꾸려가려고 했는데 그냥 역시 일기나 써야겠습니다.